약을 제때 먹게 하는 포장용기! '99닷츠'

2017.03.21 11:47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제대로 진단해서 적합한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환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바로 처방받은 약을 제때 잘 먹는 것이다. 이것을 보통 '복약 이행도'라고 정의하는데, 약사들은 환자의 복약 이행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 주의해야 할 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지난번 약은 잘 챙겨먹었는지, 복용 중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등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을 이용한다.
복약 이행은 모든 병의 치료에 있어 중요한 요건이지만, 특히 중요한 몇 가지 질환이 있다. 결핵도 그중 하나다. 결핵은 처방된 약을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먹기만 하면 보통 완치되지만, 복용이 불규칙하거나 중단되는 경우 내성 결핵이 발병하여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
약을 제때 먹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약 먹는 것을 깜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깜빡'한 것의 결과는 병이 완치되느냐 아니냐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환자들이 약을 잊지 않고 복용하게 할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의 혁신 기술 25선 중 하나로 소개된 '99닷츠(99DOTS)'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99닷츠는 인도와 미얀마의 결핵 환자들이 약을 잘 복용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다. 이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아주 간단하다. 또 저렴해서 모든 환자가 누릴 수 있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바로 약의 2차 포장 용기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접하게 되는 포장 용기는 '약을 밀어 꺼내먹는' PTP(Press Through Package) 방식인데, 99닷츠는 이 PTP 포장을 덮을 수 있는 용기를 추가로 제작한다. 새로운 용기는 각 알약 뒷편에 전화번호를 숨겨두어 복용을 해야만 번호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방법은 단독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고, 기존 결핵 치료법 중 하나인 '직접복용확인법(Directly Observed Therapy, 이하 DOT)'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된다. DOT는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 약을 받고 의료진 눈앞에서 복용하는 방법이다.
결핵 치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어려운 점은 꾸준하고 규칙적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6개월 이상 혈액 내 약물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DOT는 약을 복용하지 않는 확률을 낮춰 결핵 치료 실패와 재발을 방지한다.
하지만 이는 의료인과 환자 모두에게 매우 번거로울 수 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복용 여부를 온라인으로 모니터링하는 장비도 개발되었지만 대당 100달러 정도로 비싼 편이다. 개발도상국의 저소득 계층은 이용할 수 없는 방법인데, 문제는 이들이 결핵에 걸리기 더욱 쉽다는 것이다.
99닷츠는 포장 용기만으로 복용 확인을 가능하게 한다. 포장을 뜯어야만 숨겨진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호는 예측할 수 없게 배열되어 있어 반드시 해당 일자의 약을 복용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 환자는 전화를 걸어 약을 복용했다는 것을 알리고, 이는 환자가 직접 약을 복용했다는 중요한 증거로 활용된다. 물론 통화료는 공짜다.
물론 전화번호 확인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99닷츠는 SMS와 전화로 알림 서비스도 제공한다.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 의료진에게 알림이 전달되며 이를 확인한 의료진은 환자에게 개인적으로 전화 연락을 한다. 웹 서비스를 통해 복용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99닷츠 서비스의 혜택을 정리하면 크게 3가지다. 첫째, DOT를 위해 환자가 직접 먼 거리의 의료기관에 올 필요가 없어진다. 둘째, 실시간으로 약물 복용을 모니터링 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여 효율적인 환자 관리가 가능해진다. 직접 환자를 만나 확인하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진료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쉽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99닷츠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정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현재까지 99닷츠 서비스는 인도와 미얀마의 결핵 환자 17,829명에게 알약 575,444개를 복용시켰다. 너무나 간단해 언뜻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혁신이 비싸고 화려할 필요는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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